<시인의 마을>오월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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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소리가 나지막이 다가온다
오늘도 여전히 줄을 서야만 향기에 젖을 수 있다
이놈의 것이 무어라고 새벽부터
눈을 뜰 때마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게 한다
다시는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그와의 거리두기는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눈동자가 풀리는 아슬아슬한 시간의 연속이다
당뇨가 담배가 그렇듯이 금단이가 무섭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고소한 커피 향을 입안 가득 채운다
이길 수 없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에 퍼질러 앉아
100원이던 달콤한 학생회관 앞 자판기
커피 마시며 부르던 그 노래, 아침이슬을
장미 피는 오월이면, 독재 타도를 외치며
-두 주먹 하늘 향해 찢어대던 그 날처럼
-언제 다시 불러볼 수 있을까?
-아직 다들 살아 있겠지?
-연락도 되지 않고 답답하네?
-어휴?
장미 피는 오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던
자판기 커피는 먼저 간 친구처럼
그 커피 향을, 그 흔한 카페에서
많기도 많은 커피 메뉴판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듯이
기계처럼, 드르륵드르륵 손으로 원두를 간다
구수한 숭늉같이 내린 방울방울 커피 멍울이다
그 마디 마디마다 못다 한 날들이 흐른다
주변은 시끌벅적하고 아직도 새벽은 안개다
마치 로봇이 된 듯
커피 없인
일분일초도 살 수 없다는 중독자처럼
그렇게 오늘도 여전히 줄을 서야만 한다
새벽을 여는 구수한 냄새가
마약처럼 말초신경을 마비시킨다
오늘도 여전히 줄을 서야만 한다
에고, 에고, 한심해라
커피 향, 그 향기에 젖기 위해 잘 짜인 프로그램처럼
-박여범 시인 '오월의 커피' 전문-
‖시(詩)를 담다‖
눈이 머금은 곳에는 카페가 있다. 심지어 한 건물에 1층에서부터 3층까지 카페가 영업 중인 곳도 있다. 커피는 세계인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그중 유독 심하게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손에는 커피가 딱 붙어 있다. 아침이건, 점심이건, 저녁이건 시간에 상관없이 커피를 갈고, 내리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때론, 귀찮아 가계에 줄을 서서 커피를 포장해 온다.
가난해서 행복했던 시절,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던 5월이 아련하다. 자판기 커피가 맛이 있었다. 누구나 마시던 그 자판기 커피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단돈 100원이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었던 커피, 그 커피가 그리워진다.
올망졸망 모여앉아 정치 이야기에 학내민주화에 온통 갈등과 투쟁이 난무하던 시절의 커피다. 그래서 더 달콤하게 다가온 커피였는지 모른다. 그때의 동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답이 없다. 어렴풋이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소식만이 귀를 간질거리게 한다.
출근한 직장의 풍경은 커피 나눔이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을 다 동원하며 최대한 맛을 느끼려 한다. 경쟁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커피 향, 그 향기에 젖기 위해 잘 짜인 프로그램처럼
박여범 /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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