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안개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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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바닥에서 하늘로 슬며시 오르며 흐른다
나무에서 나무로 살짝 움직인다
거센 파도가 물결치듯 밀려온다
어디선가 나지막이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다
흐르던 안개에 숨겨진 큰 눈동자다
새벽잠 설친 고라니를 갈 길 몰라 헤매게 하는 안개다
하늘하늘 내려오는 물안개의 야릇한 속삭임이다
봄을 나무에서 나무로, 하늘에서 땅으로 전한다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수직 하강한다
모락모락 피어나던 수증기가 안개가 되어 흐른다
공룡 발톱 같은 솥뚜껑이 열린다
그 너머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실루엣이 펼쳐진다
먹음직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은 찐빵이다
먹고 싶어 군침만 삼키던 그 날처럼 말이다
그 누군가에게는, 자연의 질서에 순종하며 생사를 보듬는다
그 모양이 피어나는 버들강아지처럼 안개가 흐른다
또, 안개가 내리는 날이 누군가는 의미가 없다
안개가 흐르는 벤치에 앉아 감상 모드로 전환한다
안개가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흐르는 날이다
자연법칙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무덤덤하게 일상을 누린다
고독한 금붕어도 꼬리를 흔든다
안개 연못의 흐름에 박자 맞춰 길을 나선다
-박여범 시인 '안개가 흐른다' 전문-
‖시(詩)를 담다‖
여섯 시, 집을 나섰다. 물안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른 새벽이 그를 만나는 지름길이다. 가벼운 달리기와 걷기는 신선한 공기를 맞이하기에 아주 좋은 운동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인사를 건넨다. 아침 운동으로 만나는 이웃이다. 그 이웃의 미소와 땀 냄새가 비가 내리듯 자욱하게 물안개를 만들어낸다. 그 누구에게는 촉촉한 영양제로, 그 누구에게는 생명수로 그렇게 친숙하다.
물안개의 신비함을 표현하는 문장은 쉽지 않다. 행간을 채우기엔 아직 우리는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잊을만하면 나타난다. 버들강아지처럼, 금붕어 한 마리처럼 불현듯 나타나 놀라게 한다. 나이가 쌓여갈수록 도심에 살아야 한다. 병원이 가까워야 촛불 같은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안개가 흐르면 /바닥에서 하늘로/, /나무에서 나무로/, /거센 파도가 물결치듯/ 밀려온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도 /놀란 새벽잠 설친 고라니를/, /갈 길 몰라 헤매게 하는/ 안개다. 하늘하늘 내려오는 물안개의 야릇한 속삭임이다. 봄을 나무에서 나무로, 하늘에서 땅으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하강하며 퍼져/가는 안개가 흐른다.
혹여, 기대하지 않았던 물안개를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안개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설칠 것만 같다. 이미 나는 안개와 같이 흐르고 있다. 어깨동무하고……
▲박여범(용북중학교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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