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어머니처럼만 살겠습니다 -이별, 그리고 기억-
가-
가+
어머니는 백사십팔 센티, 작은 천사였습니다
구십삼 년, 모진 풍파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무섭고 피해 갈 수 없는 길을 가셨습니다
요양병원 창밖을 바라보며, 얼마나 가족의 온기를 그리워했을까요
십 년을 훌쩍 넘긴 여행길,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쩌다 한 번, 다녀가는 못난 자식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쁘다는 핑계 아닌 이유가 많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어쩌다가, 가끔, 뵈러 요양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때마다, 전주, 그래, 셋째 아들을 외치며 안아 주셨습니다
아직도, 두 손 잡아 주시던, 당신의 체온이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부잣집 귀한 소녀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사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난한 아버지 만나 고생보따리만 늘어 갔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하늘나라 가는 그 소천의 길이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호강 한 번 못 해보시고, 떠난 그 길에 속상함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평생 꽃 한 다발, 안기지 못한 못난 자식입니다
항상 웃음으로, 너그러움으로, 반기는 당신이 있습니다
쉰여섯, 행복이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망울망울 꽃망울, 활짝 웃음 넘치는 그 길에서
아버지를 만나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꽃 속의 꽃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입니다
그 꽃을 모두 아우르는 세 글자는 위대합니다
발그레 웃으며, 셋째 아들 손잡으시던 엄니,
이제 가면 언제 오시렵니까
하늘나라 떠나는 뒷모습만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겠습니다
당신이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없이 살아 낸 어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눈물바다는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소리 없이, 그렇지만 약하지 않은, 셋째 아들로 살아가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여정을, 어머니의 그 길을 따라 걸어가렵니다
어머니처럼만 살고 싶습니다
-박여범 시인 '어머니처럼만 살겠습니다' 전문-
‖시(詩)를 담다‖
전화벨이 울린다. 익숙한 번호다. 어머니를 모시는 큰형님의 전화다. 통화 내용은 간단하다. 어머니가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어르신이 식사를 못 하시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늦기 전에 뵙고 오리라 마음먹는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울린다. 그가 전해준 소식은 어머니 부고였다.
아버지 소천 후 20년을 더 살다 가신 어머니다. 그렇지만 자식으로서 안타까운 것이 있다. 이십 년의 절반을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보낸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치매로 자식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녀의 굴곡진 삶에 마음이 아프다.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자식이었다.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이런 내가 미워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러한 어머니가 어디 한두 분이시겠는가?
모든 자식은 똑같다. 이별의 아픔이 있고 나서야 깨달을 정도로 어리석기만 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따뜻하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있다. 그런 어머니처럼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백오십이 되지도 않는 작은 몸으로 거센 파도를 이겨낸 어머니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어머니가 그리워 올려다본 영정(影幀)**이 멀어져만 간다.
**영정(影幀): 제사나 장례를 지낼 때 위패 대신 쓰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족자
▲박여범(용북중학교 시인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Copyrightⓒ전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