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는 누구나 하나쯤 시인의 마을이 있다. 뭐라 자랑할 것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시를 읽고 쓰는 초보가 머무는 마을이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시를 읽고 끄적거리며 살아가는 평온함만이 가득하리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거시기할 것 같던 거기도 어쩔 수 없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거시기한 거그와 그렇게 여름은 간다.

그 뒤를 이어 빠른 발로 가을이 오고 있다. 아니, 아무도 모르게 발가락 사이에 가을은 송골송골 이슬을 맺었다. 어쩜, 이렇게 가을인데도 징허게 덥고 습기는 짜증을 난다. 샤워를 해도 몸은 끈적거리고 눅눅한 날이 엊그제 여름보다 덜하지는 않다. 살아오면서 들어보지 못한 ‘가을장마’가 많은 이의 영혼을 어둠의 성으로 이끌고 있다.

덤으로 하나 더 기억해야 하는 가을이 있다. 바로, 점심나절의 따사로움이다. 조상들은 이것을 곡식이 익어가는 조건의 하나로 보았다. 큰 기온 차에 조금 힘든 시기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다. 얇은 겉옷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그래도 창문 너머 대추나무에 붉게 물든 농부의 얼굴이 가득할 때면 덩달아 차오르는 흥에 미소 짓게 된다.

올해 가을에 포함된 항목이 하나 더 늘었다. 가을을 힘들게 하는 목록 플러스 바로 마스크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는 고마운 마스크다. 그렇지만, 때로는 힘이 들 때도 있다. 코가 너무 답답하다. 입이 마르고 목에는 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의 목을 죄는 마스크만 없어도 살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의 마을에서는 필요하면서도 천시되던 마스크가 이제는 너무나 간절하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무엇인가 얼굴을 가릴 것이 필요하다. 출근하는 도로가 이른 아침임에도 가득하다. 잠시 신호등에 걸려 차를 멈춘다. 운전자 대부분이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막고 있다. <2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