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교사로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다움’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고민이 필요 없다. ‘착하다’라는 단어다. 형용사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이다. 유의어로는 ‘상냥하다’, ‘순하다’, ‘순탄하다’, 반의어로는 ‘악하다’, ‘흉악하다’, ‘악랄하다’로 정리할 수 있다. 

‘나다움’에 대한 물음표는 “여범쌤, 여범쌤은 정말 착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그래, 고마워”라는 짧은 대화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착하다’는 의미가 사전적인 의미로 다가왔기에 단순한 나의 뇌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못했다. 그저 사전적인 뜻풀이처럼, ‘착하다’는 개념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다’는 나름의 개념 정리 때문이었다. 

문제는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방탄소년단 멤버와 결혼할 것이라며 늘 애교를 보이던 인서가 멀리서 달려와 “우리 반 다음 시간 국어예요, 기대할게요~ 여범쌤은 착하세요?”라며 하트를 남발한다. ‘뭐야, 자식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보여 달라는 거 아냐? 2차 고사도 끝나고 방학이니…….’라는 생각이 눈앞을 질주한다. 

혹여, 아이들이 생각하는 ‘착하다’는 의미와 나의 시각이 다른 것을 아닐까? 의문부호에 의문부호가 늘어나자,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야?' 급기야, 나의 뇌는 빠르게 회전하여 ‘어떤 나쁜 행동을 해도 문제 삼지 않고, 자신들의 뜻을 잘 받아주는 교사’라는 의미까지 확대하여 해석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그러자, 불쾌한 감정이 팍 올라왔다. 그래서 잠시 복도에서 물끄러미 교실을 향해 콧노래를 부르는 많은 아이를 바라다보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평교사로 부임했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순수한 소년, 소녀가 선생님이라는 어색한 발음은 무시하고 ‘여범쌤은 착하세요(?) 그래야 우리의 여범쌤이세요’라며 깔깔거리는 힘이 나는 공간이다. 녀석들은 여전히 ‘여범쌤은 착하세요(?)’에서 나름 ‘서로에 서로다움’을 눈빛으로 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지구촌을 대혼란으로 몰고 간 ‘코로나 19'에도 ‘착한 여범쌤’과 손가락 하트를 남발하던 녀석들은 ‘서로를 서로답게’ 만들어 주는 2020년 새 학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개학은 연기되고 원격입학과 개학이라는 사이버 세상을 통해 ‘여범쌤’이 아닌 ‘선생님’이라는 어색한 호칭으로 녀석들을 비대면 했다. 산더미 같은 공문에 치여 원격수업 준비와 방역, 그리고 코로나 예방을 위한 지침은 3월에 나에게 배달된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나다움’은 시인으로 평론가로 수필가로 여유와 발맞춤이다. 그러기에는 현실이 너무 아프고 야속하다. ‘나를 나답게 한다는 것’은 현실에는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나다움’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잔혹하다. '여유'를 찾는 것도 어쩌면 '사치'였다.

지난여름, 천둥소리가 요란하던 어느 날, 교정은 시험으로 조용하다. 장맛비가 멈출 줄 모른다. 2층에서 바라본 학교 앞 매내천은 온통 황톳빛이다. 평상시 졸졸 흐르던 실개천이 거대한 강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돌다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 하나도 불안하다. 강물이 범람할 지경이다. <3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 교감 시인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