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주말 아침, 시원스레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제법 햇살이 따사롭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몇 개 남지 않은 앙상한 감나무와 까치 부부를 바라본다. 거실 의자에 앉으면, 금방이라도 졸음이 몰려올 것만 같다. 너무나 익숙해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들과 눈을 맞춰본다.

“어머, 여기, 여기, 고놈 참 신기하네, 어제까지도 다 죽어가더니만……”  “ 

“어디, 어디, 무슨 나무에……”

“보라색 꽃이 피었네.”

“나도 진작 봤어, 그런데, ‘나무가 죽어가는구나’ 생각했지. 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네? 보라색이라 참 예쁘다.”

“어디, 다른 나무도 꽃이 피려나?”

“지금 우리 꽃을 사랑하고 있는 거 맞지?”

“그래, 지금 사랑하고 있는 거야”

“지금 사랑하고 있는 거야, 어디서 많이 본 문장인데……”

“……”

“ 아, 생각났어, 이경림 시인의 「자작나무야」, 그래 그 시의 첫 행이었어”

창밖을 보며 깊어가는 가을이 아쉽기만 하다. 안방 베란다에 있는 큰 화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화분에 ‘자작나무를 한 그루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했다. ‘너 지금 사랑하고 있구나’로 시작해서 ‘너 많이 아프구나’로 마무리되는 이경림 시인의 「자작나무야」가 기억의 저편에서 툭, 내게로 달려왔다. <2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