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결산하면서 교수들이 사자성어를 선정했다. ‘장두노미(藏頭露尾)’.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각각의 한자가 어려운 게 아니라서 숨겨진 함의(含意)를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이라서 생소하다. 
@신문에 소개된 것을 보니 중국 원나라의 문인 장가구가 지은 <점강진ㆍ번귀거래사>와 왕엽이 지은 <도화녀>라는 문학작품에서 나온다고 한다. 타조가 위협을 당해 쫓기면 머리만 덤불 속에 숨기고 꼬리털은 숨기지 못해 쩔쩔 맨다는 것이다. 그처럼 진실은 감춰도 거짓의 실마리는 드러나 있음을 빗대어 풍자한 것이리라.
그러면 교수들은 한국의 무엇을 풍자하고자 한 것일까. 지난 1년간 온갖 의혹 때문에 전전긍긍한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것임은 분명하다. 천안함 침몰사고 이래 미심쩍은 사건들이 많았던 것이다. 검찰의 편파수사며, 권력기관들의 경쟁적인 민간인 사찰이며, 한미 FTA 재협상이며, 새해 예산안 졸속통과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현재 남과 북은 팽팽한 맞대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의 한자성어를 위한 설문조사에 응한 교수는 모두 212 명이다. 장두노미를 추천한 이는 고려대 철학과의 이승환 교수이다. 그런데 그게 매우 절묘하다. 교수들의 41%가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마구 얽혀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곤경이나 난제를 의미하는 ‘반근착절(盤根錯節’)이 그 다음으로 20%의 공감을 얻고, 골육상쟁을 뜻하는 ‘자두연기(煮豆燃?)’가 그 다음으로 12%의 공감을 얻었다. 안전한 때일수록 위기의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계우포상(繫于包桑)’은 10%를 얻었다.
돌이켜보면 올해도 상투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겠다. 다사다난 (多事多難)말이다. 그래서 나는 밀레니엄이 마뜩치 않다. 뜻이 안 좋은 사자성어를 익혀온 지도 벌써 10년 세월이다. 어렵고 생소한 사자성어로 매번 마무리돼야 하는 것인지, 불완전한 인간들의 불완전한 정치를 웃어주고 싶을 뿐이다.
/ 논설위원 이희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