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이 뭐냐고 물어보면 수복(壽福)을 든다. 부귀영화를 최고의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오래 사는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둔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요절을 하거나 단명한 것은 싫어한다.
한국에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성서 속의 장수자들을 여기 잠깐 언급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창세기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정도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명단이 나온다. 성서의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일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이다. 그는 969년을 향수했다. 다음은 야렛인데 962년을 향수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저 유명한 노아인데 950년을 향수했다.
성서 속의 인물이라도 홍수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아브라함이 175 년을 살았고, 이삭이 180 년을 살았고, 야곱은 147년을 살았다. 그나마 오늘날 이 지상에는 그처럼 오래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기껏해야 사람들은 일흔 살에서 여든 살 사이의 평균 수명을 살다가 사라질 뿐이다.
요즘 장수 시대라지만 아흔 살이 넘은 사람은 드물다. 더러는 1세기 넘게 산 노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텔레비전의 화면에 나오거나 신문 지면에 소개되기도 하지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명예는 아니다. 요셉이나 여호수아처럼 110년을 산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모세처럼 120년이나 아론처럼 123년을 산 사람은 지구상에서도 어쩌다 있을 뿐이다. 장 칼맹이 바로 그런 사람인데 아직까지 그 여인보다 오래 산 사람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는 1997년에 사망할 때 나이가 만으로 백스물 둘이었다. 정확하게 계산하자면 5개월하고도 2주일을 더 살았으니 우리 한국 사람들의 나이로 치면 백스물셋이다.
그러면 장수가 무조건 최고의 가치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엘리어트의 장시 <황무지>의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쿠마에의 무녀처럼 돼서는 안 되겠기에 말이다. 건강이 보장되지 않은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쿠마에의 무녀는 손에 든 흙먼지의 수만큼이나 오래 살도록 허용됐지만 젊음을 조건으로 말하지 않은 까닭에 하릴없이 늙어가는 고통을 겪어야했다. 그것도 병 속에 매달릴 정도로 몸이 쪼그라들어야했으니 아무리 이교신화라지만 끔찍하다. 그런데 쿠마에의 무녀에게 어린애들이 놀려대며 물어본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쿠마에의 무녀는 대답한다. 죽음이 소원이라고.
정부의 의뢰로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표한 게 있다. 2020년이면 한국에 ‘백세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 열 명에 네 명 꼴로 그 백세시대를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장수가 최고의 복이 되게 하려면 갖추어야할 필요충분조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과연 그 일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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