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에 귀신지위덕 기성의호(鬼神之爲德 其盛矣乎)라는 구절이 나온다. “귀신의 덕이란 참 대단히 왕성하구나”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귀신’이 뭘 뜻하느냐다. 물론 중용이 유학 경전인 만큼 여기에서의 귀신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죽은 자의 혼’을 지칭할 리는 없다. 더욱이 이 말은 귀신 따위를 절대 믿지 않았던 공자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주석가들은 글자 그대로 귀신으로 해석하거나 ‘음양법칙’ 정도로 의역하고 있다. 다만, 주자(朱子)만이 이를 굴신(屈伸-오므렸다 폈다하는 작용)으로 보고, “굴신의 덕이란 참 대단히 왕성하구나”로 해석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만물, 심지어 대자연까지도 이 굴신작용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실 이 세상 모든 게 굴신이 아닌 게 없다. 굼벵이의 움직임에서부터 우리의 몸동작 하나, 여러 동물들의 움직임, 하다못해 풀 한 포기의 움직임, 지층의 변화, 우주의 팽창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오므렸다 폈다의 반복인 굴신작용의 연속이다. 아무튼 인간을 포함한 대자연에서 굴신이 아닌 게 없다.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을 단 한 마디, ‘굴신’으로 규정한 공자의 혜안에 새삼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굴신이 중지되면 그 생명은 그것으로 끝난다. 사람도 죽을 때 누구를 막론하고 꼴깍하는 순간 마지막 숨을 들이마신다. ‘숨을 거두었다’는 말이그것이다. 반면, 태어날 때는 역시 누구를 막론하고 숨을 후하고 내뿜는다. 이것도 굴신이지만, 생전에 평소 무심코 숨을 내뱉었다가 들여마시는 숨쉬기도 굴신이다. 결국 굴신은 생명의 엄정한 현상, 그 자체다. 그리고 굴(屈)할 때 굴(屈)하고, 신(伸)할 때 신(伸)해야 하는 것은 생명법칙이기도 하고 세상 이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굴(屈)할 때 신(伸)하고, 신(伸)할 때 굴(屈)하는, 즉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 봐야 생명단축 뿐일 텐데, 전혀 아랑곳없다. 천-인륜 등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린 자들이 그들이다.

/서재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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