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명예무주군민에 추대되었다. 이는 2만4천여 명 무주군민과 함께하는 일원이 되기에 영광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山水 수려한 두메마을 안성면 명천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무주하면 예부터 누구나 구천동을 떠올리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의 오지로 인식해 왔다. 실제적으로도 군(郡)의 대부분이 높은 산지로 형성돼 있고, 6개 읍면의 작은 행정구역에 면적과 인구도 극히 적은 편이다. 또한 경지면적이 적고 산업시설이 거의 없는 관계로 재정자립도도 매우 낮다. 그래서 내 어릴 때만 해도 해마다 봄이 되면 양식이 떨어져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해야 했다. 당시는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겪을 때였으니 경작지가 적은 무주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뜻하지 않게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게 되면서 어린 나이에 살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고향에서 간신히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다니다 18살 되던 해에 혈연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가면서 간신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공무원이 되고자 시험 준비도 열심히 했다. 다행히 합격이 되었다. 공복의 길로 들어서면서 경제기획원, 청와대, 사회정화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부처를 옮겨 다니면서 큰 과오 없이 공직자로서 30여년을 봉직하였다. 공무원을 그만두고서도 수협중앙회(부회장), ㈜코레트신탁(대표이사 사장), ㈜대우인터내셔널(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장) 등에서 임원직으로 있으면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였다. 이젠 자녀(3남매)들도 모두 장성하여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났으며, 지금은 테니스와 골프를 치면서 아내와 함께 소일하고 있다. 무주를 떠나 근 60여 년 동안 출향민으로서 걸어온 흔적들을 이렇게 밝히는 것은 명예군민이 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날 공직자로서 걸어 온 길은 나에겐 큰 보람이었다고 생각된다. 1000년대와 2000년대 두 밀레니엄(Millennium)과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Century)에 걸친 희대(稀代)를 살아오면서 반만년동안이나 지속돼 오던 온 겨레의 가난을 없애고, 또 최 빈곤국가에서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제대국으로 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데 일조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게 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이룩한 것이기에 그 의의는 더욱더 크다고 본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낸 것이다. 내 나이 지금 80에 불과하지만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천 년을 살아 온 느낌이다. 내 어릴 때 사용했던 원시적인 물건들이 우리세대에 모두가 현대 화 되었기 때문이다. 호미, 낫, 지게, 도리께 등 원시적 농기구들은 모두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등으로 기계화되었고, 벌겋게 벗겨진 황량한 산 밑의 쓰러질듯 한 초가집과 천수답, 논두렁 밭두렁 사이길 따라 지게지고 다니던 곳들이 지금은 짙푸른 산 밑의 아담한 가옥, 잘 정지된 논과 밭, 확 트인 포장길을 달리는 자동차 등 참으로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국민소득도 1인당 60여 달러에서 3만 달러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편에 계속>

강평수 / 전 외교통상부 통상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