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의 감정적인 반일/반미여론의 양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불매운동을 두고 감정적인 반일여론이라 매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 삼일절에 '방법 2002'인가 하는 프로그램으로 디씨 등지에서 네티즌들이 몰려가 일본 최대 커뮤니티인 2CH을 트래픽 과부하로 마비시킨 일이 있었다. 미군 장갑차 반미시위가 한창일 때 맥도널드를 군중이 둘러싸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손님들을 내쫓은 일도 있었다. 씁쓸한 기억들이다.

예전의 진짜 감정적 민족주의의 '매운 맛'이란 그런 식이었다. 스스로 힘이 없고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과격해지는 것이다. 그때의 민족주의의 원동력은 확실히 자격지심과 콤플렉스였다.

그 당시의 불타는 화력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평화롭고 얌전한 분위기이다. 이제는 굳이 네티즌들이 5CH로 몰려가서 악플을 도배하고 트래픽 공격으로 사이트를 마비시키려 하지 않는다.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고 편의점의 맥주를 다른 것으로 고르고, 여행지를 다른 곳으로 선택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응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족주의는 역설적으로 더 개인주의화되었고 더 쿨 해졌고 더 자신만만해졌다.

지금 이 변화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이 여기 저기 목에 핏대를 세운다.

민족주의 담론과 정서가 예전보다 진화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좌파의 경우) 진보넷 블로그 시절의 탈 민족주의 담론을 고장난 테이프처럼 재생하거나(우파의 경우) 2000년대 초반의 노무현 신드롬에 당했던 트라우마에 빙의해서 혼자 불타는 것이다. 

어쩌다 일본상품을 소비하고 일본여행을 가는 사람을 일일이 저격해서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제시키는 분위기가 커뮤니티에 존재한다. 마치 지난날 탄핵 촛불시위 때 전경을 공격하는 사람을 시위대가 나서서 제지했듯이 말이다. 물론 이런 변화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보다 탄핵 촛불시위가 더 발전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별개의 정치적 사건을 막무가내로 뒤섞는 경향이 있다.

곽보경 / 칼럼니스트 겸 여행작가